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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몬 트래블러 Digimon Traveler 1권 4~6

4.

 노랑머리의 소녀. 현재 청소년들 사이에서 꽤 이슈가 되어 있었다. 언제나 웃음 짓는 얼굴로 노란 괴물과 함께한다는 것이었다.

 “노란머리의 귀여운 롤빵 머리 소녀가 위험에 빠지면 나타나서 구해준대.”

 베이지색 교복을 입고 하교하던 중 갈색 머리 소년이 떠올린 말이었다. 그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외양에 빛이 나는 눈이 인상적이었다. 저녁이 다 되어서 어둠이 짙게 깔릴 때까지 소년은 학교에 있었다. 오늘 이 말이 유행했던 건 자신과 동급생이었던 소년의 사건 때문이었다.

 “야. 달팽이 괴물이 있었다고!”

 그 아이가 힘차게 주장한 내용이었다. 갈색 머리 소년은 원래 남들과 떨어져 지내기 때문에 그사이에 낄 수 없었다. 단지 들려오는 것을 들었을 뿐이었다. 별로 필요 없다 생각하고 나서는 오늘 배운 내용을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어두워지자 그는 집 앞에 도착했고 성문처럼 커다란 문이 그를 맞이했다. 소년은 지문을 찍고 들어섰다. 언제나 싸늘한 공기가 그의 곁을 스쳤고 여전히 집은 차가웠다. 가끔 왔다가는 아주머니들 외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3층 집 바닥엔 레드카펫이 깔려 있었다. 바닥은 회색의 딱딱하고 매끄러운 돌로 되어 있었다. 벽은 금빛으로 되어 칠해져 고풍스러움을 더했다. 신발을 벗고 카펫에 발을 들이자 따스하며 부드러운 털의 감촉이 소년의 발에 닿았다.

 “….”

 부모는 존재하지 않은 듯 집 안은 고요했다. 한숨을 푹 쉰 소년이 계단을 올라갔다. 아무것도 없는 집 안에서 욕실에 들어가기 위해 계단에 모두 올라선 찰나였다.

 펑!

 소년은 자신의 앞에서 방이 터져버린 것을 목격했다. 집은 무너지지 않았지만 잠시 몸이 굳은 그가 멍하니 그쪽을 바라봤다. 흙먼지 속에서 뭔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

 갑작스럽게 발목을 뭔가가 잡았다. 소년은 뒷걸음질 쳤지만 그대로 온몸이 묶여 공중에 들어 올려졌다. 점점 죄어오는 촉수에 몸이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뭐야. 테이머 아니야?”

 목소리가 들렸다. 성인의 목소리 같았지만 그렇다고 성숙한 말투는 아니었다. 먼지가 서서히 거치자 키가 작고 머리칼이 검은 소년이 있었다. 굉장히 말라서인지 옷이 굉장히 헐렁해 보였다. 그리고 옆에는 머리에 꽃을 얹은 검은 눈의 괴물이 있었다. 소년보다 작았지만 큰 입과 초점 없는 눈은 공포감을 자아냈다. 그리고 그것의 팔엔 지금 소년을 묶고 있는 촉수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으… 하아. 하아.”

 소년은 숨이 가빠왔다. 머리가 어지러웠고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팔몬. 아무것도 없네. 이 녀석 테이머 맞나?”

 숨이 점점 가파오르자 소년은 모든 것을 포기해버렸다. 이상한 괴물의 뒤엔 목에 황금빛 띠를 맨 강아지를 안은 누군가가 있었다. 그것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그 가루가 괴물에게로 흡수되자 촉수가 조이는 힘이 더 강해졌다.

 “그냥 인간의 데이터도 괜찮나?”

 소년은 뭔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분명 반응이 맞을 텐데. 그냥 뭐 먹어버리지. 디지몬이 죽었을 수도 있고.”

 디지몬이라는 단어에 문득 소년은 처음 듣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점점 몸의 힘이 빠져나가고 죽음이 다가옴을 어렴풋이 알았다. 고약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괴물 옆에 있던 소년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괴물을 한 대 쳤다.

 “야! 니 냄새는 진짜 적응이 안 된다.”

 괴물은 잠시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으잉. 나도 조절할 수가 없는뎅.”

 둘이 실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던 사이였다. 소년의 귀에서 이상한 소음이 들렸다.

 [유태야. 유태야.]

 감기던 눈이 점점 뜨여졌다. 주위가 갑작스럽게 정전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 집뿐만이 아니라 다른 건물도 암흑으로 뒤덮여갔다. 사람들은 단순한 정전이라고 생각했고 괴물과 같이 있던 소년도 그렇게 여기며 말했다.

 “이 시대에 정전이냐.”

 [유태야. 나의 테이머.]

 그리고 또 목소리가 들렸다.

 [살려달라고 외쳐라. 유태]

 [지금 널 구할게]

 한순간의 붉은 섬광이 비췄다. 붉은 천둥이 내려치고 소년의 몸을 묶었던 괴물은 단숨에 반으로 쪼개져 사라졌다. 곧 옆에 있던 소년도 같이 흔적도 없이 가루가 되어버렸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소년은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했다. 그는 죽음을 체념했다. 잠깐 온통 붉은 괴물을 본 것 같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끝난 상황이었다.

 “유태야.. 널 만나기 위해…. 난 다이노몬….”

 뭔가 들리는 거 같았다. 정말 오래간만에 그런 목소리로 자신을 불러준 사람이 있었는지 고민했다. 어쩌면 그는 저승사자가 존재해서 자신에게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두 존재는 만났다. 

5.

 꿈인것만 같았다. 갈색머리의 소년이 눈을 뜨자 딱딱한 맨 바닥이었음을 알았다. 바로 보이는 건물의 무너진 잔해를 보자 이 일이 지극히 현실일 뿐이라는 상황을 인지했다. 한숨을 작게 내쉰 그는 어제의 기억을 떠올렸다. 죽기 직전 자신을 구해준 붉은 색의 뭔가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인 ‘유태’ 를 이야기 했던 목소리. 그것을 전부 떠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 따듯한 온기를 내뿜고 있던 파충류를 발견했다. 조금 놀랐지만 겉으론 전혀 그래보이지 않은 소년은 그것이 눈을 감고 잠들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규칙적으로 올라오는 몸짓에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온 몸이 붉었고 등엔 뾰족한 가시가 나 있었다. 그리고 팔엔 금빛으로 빛나는 뭔가를 달았다. 피부 표면은 정말 매끄러웠는데 그는 조심스레 손으로 그것을 훑었다. 의외로 사람 피부 같은 부드러움을 간직한 짐승이었다. 건물엔 구멍이 뚫렸는데 자신이 감기에 걸리지 않고 멀쩡한 건 이 파충류의 온기임을 알아챘다. 그러던 중 시계를 찾았다. 조금 몸이 피곤했지만 평소보다 일찍 자서 그런지 시계는 정확히 일곱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여덟시 반까지 학교에 가야하는 상황임을 떠올린다면 여유가 있었다. 소년은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줄기에 몸이 노곤했지만 잠이 조금씩 풀려왔다. 샤워가 끝나자 시계를 봤다. 십분이 지나지 않았다. 파충류가 막고 있던 곳을 조심스레 지나 1층으로 내려가 밥을 먹었다. 매일 오는 아주머니께서 해주신 반찬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그러면서 집 수리와 더불어 저 파충류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할까 싶었다.

 ‘아마 죽일 거였으면 금방 죽였겠고 난 여기 없었겠지? 그리고 내 옆에서 체온을 유지시킨 걸 보면 본능적인 부분이 작용했거나 굉장히 지능이 높겠지. 우연의 일치일까? 적어도 날 죽일 생각은 없을 것이고 내가 자기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어. 감각이 예민한 짐승인데도 내 소릴 듣고도 일어나지 않은게 그 증거겠네. 음.’

 잠시 생각에 몰두하던 소년은 다시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봤다. 평소만큼 여유있는 시간이었다. 지금 출발하면 느리게 걸어도 여유가 있었다. 다 먹은 아침을 싱크대에 올려놓은 뒤 종이와 펜으로 아주머니께 전달할 내용을 적었다.

 [집 수리를 부탁합니다. 괴한이 와서 집이 엉망이 됐어요. 그리고 저 동물은 제가 어제 사온 파충류입니다. 차가운 방바닥을 좋아하는거 같으니 그냥 놔두세요. 깨우면 습격할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구요. 온순해 보이지만 동물은 동물임을 명심하세요.]

 딱딱한 말투였지만 소년은 그런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집을 나서자 밖엔 온통 금이가고 부서진 흔적들이 많았다. 짐승이 남긴 듯한 발톱도 있었다. 소년은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큰 사건이 시작되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났다. 어제의 사건은 분명 큰 일이었지만 그는 감정이 없는 듯 별일 아니라고 여겼다.

 학교에 도착한 소년은 유태라는 이름으로 선생님께 불려졌다. 출석부에 그렇게 적혀있었다. ‘김유태’ 분명 그 목소리도 자신의 이름을 알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판타지 소설에나 나오는 악마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몬스터들이라면 그나마 낫겠지만 그것들이 현실에 나타나는것도 충분히 무서운 일이라고 여겼다. 출석이 끝났다. 유태는 잠시 생각에 잠기던 자신을 멈추고 교실을 훑었다. 여자 학생에게 인기있는 잘생기고 키 큰 담임이 복도로 나가자 여자애들은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서로 잘생겼다며 이야기를 나누고 남자애들은 교실을 뛰어다니며 온갖 장난을 부렸다. 그리고 유태에게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수업준비를 하고 있던 유태는 단 한마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괴물 진짜 있나?”

 괴물이라는 말에 고개가 돌아갈 뻔했다. 그런데 거기에 관심을 가지던 애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서로 근원을 찾아서 아이들은 꼬리를 물고 그쪽에 모였다.

 “야. 오늘 벽에 발톱자국 있었어!”

 “시발 개무섭.”

 “야! 옆 반에 괴물 본 새끼 있댄다.”

 교실은 괴물 이야기로 통합을 이루었다. 공부를 잘 하던 아이, 못하던 아이 모두 괴물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인터넷에서 봤는데 괴물이 사람들 죽였다던데.”

 “아. 요즘 사람들 실종된다면서 그것도 전국적으로 존나 무섭.”

 “야. 밤길 조심해.”

 “왜 다들 나만 보는 거야!”

 “넌 여자애들보다 근육이 없잖아.”

그렇게 하루가 시작됐다. 그 때 유태는 자신의 가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다른 애들은 관심도 없는 듯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수업이 곧 시작되기 전이었다. 아이들이 서서히 자리로 돌아갈 무렵이었다. 과목의 교사가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몇 분이 지났다. 아이들이 서서히 떠들기 시작했다.

 “내가 찾으러 갔다 올게.” 반장의 이야기에 몇몇 애들은 별로 호응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점점 소란스러워졌다. 유태는 자신의 귀에만 들리는 이상한 소리를 끝내고 싶었다. 단순한 환청이기엔 그것이 너무 선명했고 이유가 없었다. 반장이 나가자 그는 조심스레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차가운 기계가 만져졌다. 고개를 돌려 오른편에 매달아 둔 가방을 봤다. 한 손에 잡히는 물건이었다. 은색의 몸통에 옆은 붉은색으로 둘러져 있었다. 구식 핸드폰과 비슷하게 생겼다. 하지만 이런 모습의 기계는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가방 속에서 빛을 냈다. 유태는 재빨리 교실을 벗어났다. 몇몇 애들이 봤지만 별로 궁금해하진 않았다. 화장실에 홀로 있던 그는 조심스레 그 기계를 감싼 손을 풀었다. 그러자 학교 내부를 층층이 보여줬다. 정밀한 지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1층과 3층에 붉은 점이 생겨나고 있음을 알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왠지 거기에 가야할것만 같았다. 유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6

 유태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던 중 기계가 내뿜던 빛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이미 밝은 낮인데도 어둠은 그 존재감을 더해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단숨에 어둠이 주위를 감쌌다. 유태는 주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때 폭음이 들렸고 주위가 흔들렸다. 곧 기계에서 음성이 나왔다.

 [부기몬. 성숙기 마인형 바이러스종 디지몬, 무서운 마인형 디지몬으로 몸엔 사악한 주문이 다수 새겨져 있다. 어둠 속에 매복해서 공격하는 기습이 주특기다. 필살기는 데스 클래쉬로 가지고 있는 삼지창으로 적을 찌른다.]

 “부기몬…. 디지몬…..”

 유태는 기계에 나온 설명을 자세히 읽어나갔다.

 “디지털 몬스터. 전자 공간에서 생겨난 괴물들인가?”

 “맞습니다.”

 그의 바로 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유태는 놀란 상태에서 넘어졌다.

 “움직이지 마시죠.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이 삼지창이 목을 찌를 겁니다.”

 깔끔한 저음역의 음색이었다. 기계는 부기몬의 소름돋게 생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성이었다. 하지만 저런 것이 자신의 주위에 있다는 건 여전히 공포스러웠다. 유태는 뛰는 심장을 뒤로하고 입을 열었다.

 “목적이 뭐죠. 디지털 몬스터라고 하던데. 분명 제 가방에서 발견된 기계랑 연관이 있을테고 어제 습격했던 괴물과도 연관이 있겠죠.”

 “후후후.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다니 꽤 놀랐습니다. 말씀드리죠. 당신이 가지고 있는 건 디지바이스. 테이머의 증표이자 인간과 디지몬을 이어주는 매개체입니다. 전 디지몬 중에서도 최강이 될 페레스 디 부기 오브 부기몬이라 합니다. 제 주인님께서 심혈을 기울여서 저를 만들어주셨습니다. 목적이 뭐냐고 물으셨죠? 지금은 강한 테이머를 찾는 것입니다. 어제 선택받았다고 믿어지지 않을 능력이었습니다. 단 일격에 동급의 디지몬과 그 테이머를 죽인건 말이죠.”

 유태는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그 괴물과 소년이 디지몬과 테이머라는 관계였음을 어렴풋이 알게됐다. 그리고 그 뒤에서 흡수당했던 소년과 괴물도 테이머와 디지몬이 맞다면 자신을 포함해서 더 많은 테이머와 디지몬이 있다는 것이었다.

 “테이머는 각자에게 맞는 디지몬이랑 파트너가 됩니다. 유태 당신은 정말 강한 테이머입니다. 그것이 디지몬의 힘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부기몬의 말이 끝나자 유태는 모든 상황이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현재 테이머와 디지몬이 무수히 많고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이 됐다는 거네요. 이런 상황이 되버린 건 몇가지 가능성이 있어요. 그중 하나라 한다면 테이머와 디지몬에게 필요한 것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것을 얻기 위해 테이머들은 모두 혈안이 되어 서로를 죽이는 상황이 온 거 같네요.”

 소년의 말이 끝나자 부기몬은 감탄해 마지 않았다.

 “이거 놀랍군요. 어제 선택받았다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걸 알아내셨습니다.”

 “네, 덕분에.”

 “후후. 정말 좋은 인재군요. 죽이기 아까울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저나 주인님께선 당신의 목숨을 노리고 온 것이 아닙니다. 잠시 이런 곳에 초대한 건 학교라는 곳에서 유태 당신을 지키기 위함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유태는 무슨 상황인지 알 것만 같았다.

 “디지몬이 학교에 습격했다는 건가요?”

 “이거 점점 탐나는 인재로군요. 과연 당신의 학습능력이 최상위권이라는 것은 다 이유가 있던 겁니다. 정면을 봐주세요.”

 그의 눈 앞에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유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징그럽게 온 몸이 녹아내리고 있는 검은 생명체가 반장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저….”

 부기몬은 기분나쁘게 웃었다.

 “후후후. 염려마시죠. 저들에겐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 구현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곧 저 자는 죽게 될 것입니다.”

 “살려주지 않을 건가요?”

 역시 기분나쁜 웃음소리를 내며 부기몬이 답했다.

 “저의 테이머가 되시지 않겠습니까?”

 “테이머?”

 유태가 되물었다.

 “별거 아닙니다. 최강의 디지몬은 최강의 테이머를 원할 뿐이지요. 당신이 저의 무력과 지식을 갖는다면 천하를 호령하고 세계를 지배할 디지몬의 테이머가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죠.”

 꺼림칙한 목소리로 말한 제안은 실로 달콤하기 그지 없었다. 유태는 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검은 것이 주위에 안개를 흩으렷다. 그것이 점점 형체를 드러냈다.

 “데이터 먹을거야.”

 그 괴물이 낸 음성이 소름끼쳤다. 검은 손톱이 반장의 뒷모습에 나타났다.

 “뭐지!”

 부기몬이 낸 소리였다. 검은 어둠이 찢기듯 베어졌고 거기서 흰 빛이 새어나왔다. 유태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 때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이쪽이야.”

 환영인가 싶었다. 하지만 유태는 그 목소리를 따라갔다. 빛에 닿자 유태는 어느새 학교 옥상에 누워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커다란 괴수가 있었다. 사람보다 더 컸고 노란 피부를 가진데다 팔엔 큰 흰색 발톱이 있었다. 그리고 옆엔 노란색 롤빵머리를 하고 붉은 옷을 입은 소녀가 서 있었다.

 “호호홋. 오래간만이네. 그 때 부하들 네마리나 당하고 도망갔던 못생긴 아저씨 디지몬 아니야?”

 어둠속에서 들렸던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하늘에서 붉은 빛이 부기몬의 몸에 닿자 폭발했다. 주위에 진동이 울렸다. 유태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일어섰다. 그리고 자신을 괴물에게서 구해줬던 붉은 파충류가 보였다.

 “이런 이런. 현미씨 아니신가요. 소개가 늦었습니다.”

 연기가 걷히자 부기몬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여유롭게 웃으며 신사처럼 고개를 숙였다.

 “전 페레스 디 부기 오브 부기몬이라고 합니다. 편히 부기몬이라고 부르셔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의 능력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테이머들 사이에서 유명하시죠. 저의 주인님께서도 당신은 손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아무쪼록 제 일에는 관심을 끄셨으면 합니다만 아구몬의 얼굴을 보니 썩 그렇지만도 않군요.”

 소녀는 여유있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호호홋. 그거야 네가 그런 짓을 하지 말아야지. 그 주인이라는 사람도 참 나쁜사람인거 같은데.”

 부기몬은 심기가 불편한건지 웃음을 거두었다. 그러자 아구몬과 뒤에 있던 붉은색 파충류가 곧바로 달려들것만 같이 공격 자세를 취했다.

 “일단 저보단 이 학교에 있는 디지몬들을 신경쓰시죠. 주 현미. ‘강한 디지몬을 가진 테이머는 지구의 주인이 된다.’ 는 걸 실현하기 위해선 다른 디지몬들의 데이터를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흐흐흐흐. 캬캬캬캬캬캬.”

 기분나쁜 소리였다. 부기몬은 눈 깜짝할 새에 그 자리에 없었다. 유태는 부기몬으로부터 주현미라는 이름으로 불린 여자를 보고 앞에 파충류를 봤다. 둘 다 그에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호호홋 난 주현미야. 여긴 내 친구 디지몬인 아구몬이고, 일단 학교부터 구해야 되겠지?”

 큰 눈과 하얀 얼굴은 굉장히 귀엽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말할 때마다 항상 웃는 얼굴을 보이는 소녀였다. 유태는 짤막하게 인사했다.

 “난 김유태. 나랑 동갑인가?”

 “16살이면 동갑이겠지.”

 아구몬이 말했다. 현미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기계를 꺼냈다. 노란색이긴 했지만 자신의 것과 완벽히 똑같은 물체였다. 곧 붉은 파충류가 유태에게 다가왔다.

 “난 다이노몬이라고 해. 유태야.”

 어안이 벙벙한 채로 다이노몬에게 유태가 답했다. 

“네가 내 친구 디지몬이야? 난 테이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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